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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10 10:14
법을 만나려면 반드시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글쓴이 : 붓다락키따
조회 : 456  

1. 제가 번뇌가 많은 사람이었고,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혼자 스승님 없이 하던 수행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투자한 시간에 비해서는 어쩌면 형편없는 성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익숙하고 편하게 혼자서 하던 방법으로 꾸준히 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아나빠나사띠로 선정 수행을 좀 체계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까요?

<답변> 수행이란? 법문과 수행점검이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야 합니다. 법문은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점검은 앞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 비디오 등을 보고 법문, 수행 경험을 듣는 것도 밀어주는 역할에 속하는데 이는 직접적 역할보다 간접적 역할에 해당합니다. , 자기의 현재 정진력과 사띠, 집중력에 딱 맞는 가르침이 아닐 경우가 많습니다. 점검 없이 나가기만 하기에 방향이 정확하지 않기에 맴도는 것 같고, 지금 잘하고 있는지? 바르게 하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보고 듣거나, 수행결과를 염두에 두면서 수행하기에 자치 그대로 되지 않아 불만족이 쉽게 일어나거나 체험의 결과가 더딜 수 있습니다.

사마타 수행을 먼저 할 것인가? 위빠사나 수행으로 바로 뛰어들 것인가? 스승 없이 할 때 누구건 일어나는 선택의 갈등 중 하나입니다.

수행 시간의 여유와 정진력, 집중력이 아주 좋다면 사마타를 먼저 하여 최소한 5장애를 극복한 후,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몸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정신에서 일어나는 불만족 없이 즐겁게 수행하여 몸과 마음의 성품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직장, 가정 등으로 집중적 수행할 시간이 안 된다면, 바로 위빠사나 수행법으로 자연스러운 움직임인 몸과 마음의 성품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방법으로 시작해도 좋습니다.

수행의 진보는 없지만, 세월로 어느 만큼 했다면 현재 몸과 마음의 상태를 보아 해보십시오. 몸이 무겁고 마음 상태가 산만, 산란하면 이것을 먼저 해결하는 사마타로 다스리고 그렇지 않다면 바로 현재의 분명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도록 하십시오.

마치, 음식을 먹을 때, 차린 반찬을 보면서 먹는가? 배부른 상태를 보면서 먹는가와 같습니다. 반찬을 보면서 먹으면 먹은 것이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해로울 것입니다.

2. 아나빠나사띠를 해보려고 생활 중에 호흡에 알아차림을 두려고 시도해본 적이 있습니다몸이 움직일 때나 마음에 느낌이 일어날 때 그것을 알아차리지 않고 호흡을 알아차리려고 하니... 몸과 마음의 느낌을 알아차리면서 얻던 이익들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호흡보다 더 강한 대상들이 있는데 호흡에 알아차림을 두는 것이 강제성을 띠는 것 같고, 호흡이 잘 보이지 않거나 또는 불만족에 가슴이 답답하거나 하는 불편함도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움직이거나 또는 마음의 느낌이 일어날 만한 때는 몸과 느낌을 보고, 움직임 없이 가만히 앉아서 일할 때는 거친 대상들이 사라져서 호흡을 볼 만한 상태가 되면 그때 호흡을 보고 있습니다이처럼 아나빠나사띠를 위하여 좌선시간 외에 생활 중에 호흡을 알아차리려고 할 때, 아나빠나사띠의 법문 내용처럼 무조건 호흡으로 가려고 노력해야 하는지? 아니면 거친 대상들에 알아차림을 두다가 대상들이 고요해지고 호흡을 볼만한 여건이 되었을 때 호흡에 알아차림을 둬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좌선할 때도 마찬가지로 다른 대상들을 알아차림 하다가 대상들이 고요해지고, 저절로 호흡에 사띠가 뚜렸해질 때, 그 때 코의 호흡을 보면 되는지? 아니면 니밋따를 띄우기 위해서 최대한 호흡으로 사띠를 두려고 해야하는지 궁금합니다쉐우민 방법으로 수행이 편해지고 효과를 봐서, 억지로 한가지 대상에 집중하려니 거부감이 생깁니다.

<답변> 편안함만 보면서 수행하면 집중의 힘이 약하고 자칫, 게으름에 미끄러지게 됩니다. 편안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편안함은 모든 것을 놔버려 일을 안 하고 안주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사마타란? 참새 같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수행법입니다. 그러자면 정해놓은 하나의 대상(수행주제)에만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온전히 기울여야 합니다. 니밋따는 집중의 현 상태입니다. 집중력에 따른 표시입니다. 결과에 너무 마음이 가면 현재 수행주제를 놓치거나 마음이 편하게 머물지 못합니다.

참고로 쉐우민이다, 마하시 방법이 아니라, 사띠빳타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현재 몸과 마음의 상태를 보면서 해야 합니다. , , 혜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혼자서 방법적인 결정이 어렵다면 도움을 줄 스승을 가까운 거리에서 찾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것이 됩니다.

3. 이 질문은 수행과는 상관없는 질문입니다. 몇 가지 이유로 30살부터 생선회를 먹는 것 여름에 어쩔 수 없이 모기를 잡는 것, 말실수하는 것과 어쩌다가 술을 마시는 것 외에는 거의 계를 지키며 살았습니다. (2년 전부터 생선회도 살생에 속하지 않는 경우만 먹습니다. 해충도 거의 죽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체건강하고 결혼을 원하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삿된 음행을 한 번도 하지 않았고... 마음을 너무? 바르게 가지다 보니 10년 넘게 성관계도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상대를 바꿔가며 가볍고 헤프게 연애를 하는 것이 계에 어긋나는 것 같고, 그런 행위가 반드시 합당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계를 지켜보니 어느 순간 자존감이 높아지고 떳떳하고 당당함이 느껴져서, 이것이 지계의 공덕이구나 하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바르게 변해 가는지? 바르지 못한 말을 하거나 술을 마시면 그 다음날 바로 마음이 위축되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을 뚜렷하게 느껴서 생활이 너무 힘이 듭니다이제는 술을 마시거나 심심풀이로 남을 뒷담화를 하고 싶어도 하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가끔은 주말에 소주 한병, 맥주 한병 정도 마셔도 마음에 아무 타격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보니 작년에 직장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정말 신기하리 만큼 사람들이 저의 이런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참지 못해서 상상도 못할 일들을 벌였고, 저는 직장에서 억울하게 이미지 매장을 당하고 맘고생도 심하게 했습니다아직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냥 내가 생각하는 바른 가치대로 사는데, 그것이 남들에게는 이슈가 되고, 뒷담화의 화재로 떠오르고, 그리고 자신들은 자신들의 성향대로 살면 되는데 내가 자신들에게 뭘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닌데 나를 참고 보지를 못합니다. 일어난 일을 설명하자면 tv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올 정도입니다.

이런 일을 격고 보니 세상이 너무 혐오스럽습니다. 태어나서부터 겪었던 삶의 고통들, 그리고 그런 삶의 보상으로 나 자신 바르게 생활해서 좋은 배우자 만나서 한번 행복하게 살아보겠다고 했던 그 바른 삶의 보상들과 바램들은 다 어디가고 역겨운 일들에 휘말려서 맘고생 하다 보니... 이제는 정말 다시 안 태어난다고 해도 미련이 없습니다그리고 여자라는 존재에 학을 때서 이제는 결혼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하는 마음입니다. 차라리 수행을 하며 사는 게 더 이득일 것 같습니다이런 현상들이... 제 운명이 수행자로 살아가라는 운명이라서 그런걸까요? 예전에 호두마을에서 비슷한 상담을 했더니, 어느 스님께서 그런 비슷한 답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출가는 자신이 없습니다. 결혼은 안하더라도 직장을 다니면서 수행하고 싶고, 돈을 벌어서 여행도 가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출가할 운명이라서 이렇게 필연적? 으로 시달리는가? 싶어서 겁이 좀 납니다또 만약에 출가할 운명이라면, 이미 나이가 40인데 이 늦은 나이에도 출가하는 사람이 있을지? 상가에 부담이나 주는 게 아닐지도 의문스럽습니다.

<답변> 테라와다 상가(승가)는 나이로 구분하거나 차별하지 않습니다. 출가는 세속의 허물과 무상을 알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으로 떠나야 떠난 곳의 성스런 상가의 생활에서 법의 기쁨과 희열로 지내게 됩니다.

언제 수행 상담에서 이 문제로 상담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계는 번뇌로부터 일차적인 보호막 역할을 합니다. 계를 지킨다는 것은 말과 행위에서 바른 것만 하고, 자신과 상대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신과 상대를 보호하고 지키는 바른 삶을 말합니다. 이 행위를 일으키는 것은 마음입니다. 매우 거친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일차적인 계를 지키게 하고 지혜에서 완성됩니다.

이 마음은 적을 만들지 않습니다. 물론 적은 생길 수 있습니다. 있더라도 증오, 적대, 미움으로 반응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세상(상대)은 가만히 있는데 자신이 상대의 허물을 보고 시비를 걸게 됩니다. 알아차림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 세상이 시비를 걸 것입니다. 걸더라도 상대의 업으로 알면 자신의 몸과 마음도 생각대로 되지 않는데 상대는 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상대가 내 안에 자리 잡지 않게 될 것입니다.

수행하는 것은 바깥(사회, 상대)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이 무슨 힘으로 바깥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요. 수행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여 잘못됨을 알고 반복하지 않고, 불선업의 결과를 갖지 않기 위해 원인을 철저하고 분명히 알고자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수행하는 것은 바깥(사회, 상대)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이 무슨 힘으로 바깥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요. 수행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여 잘못됨을 알고 반복하지 않고, 불선업의 결과를 갖지 않기 위해 원인을 철저하고 분명히 알고자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상대방을 알려면 어렵습니다. 상대를 보는 시간 차라리 자기를 보는 것이 낫습니다. 자기를 이해할 때, 상대를 이해합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자신에게 돌아와 자신을 알면 그로 말미암아 상대를 이해하게 됩니다.

*혹시 기러기인지요?


김준성 17-07-1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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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말씀 감사 드립니다. 여러번 되새겨 읽어보겠습니다.
 10여년 전에 스님께서 비둘기라고 별칭을 주신적이 있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_()_
붓다락키따 17-07-11 12:06
답변  
1. 정신 건강상으로 매우 훌륭한 사례가 될 정도로 극복되고 많이 정화되었습니다.
2. 더 정화하는 데 자애수행이 도움이 됩니다. 그전 너그러운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이 마음은 용서에서 일어납니다. 상대가 아니라 자신의 성냄이 일어나지 않고자 어머니, 삼촌, 동료들을 용서했으면 합니다. 그런 다음 위빠사나 수행법을 정교하게 익혔으면 합니다.
3. 성에 대한 절제는 높은 마음에서 일어나지만, 증오로 억제하는 것은 잘못된 성과 여성관이 될 수 있습니다.
4. 재미없는 영화를 볼 때, 계속 보지 않듯이 삶도 재미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재미는 절대 바깥인 사람, 자연 등에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기에 스스로 만들 수 있습니다. 집중과 지혜의 재미를 뛰어넘는 것을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김준성 17-07-1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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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글 입니다.